7년 동안 계속된 국내최초의 ‘담배소송’에서 폐암환자들이 패소했다. 1심 재판부는 “장기간 흡연과 폐암 사이의 역학적 인과관계는 인정된다”, “그러나 폐암이 흡연 이외의 다른 원인에 의해서도 생길 수 있고 흡연으로 인해 특정한 개인에게 폐암이 발생했다고는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한마디로 흡연과 폐암 사이의 ‘일반적 인과관계(재판부 용어로는 역학적 인과관계)’는 인정되나 ‘개별적인 인과관계’는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런 판결에 대해 의학계나 법조계 일각에서는 ‘상식적으로 수긍하기 어려운 판결’이라고 한다. 그런데 일반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소송이 왜 그렇게 복잡한지’ 의아스러울 것 같다.  ‘역학적 인과관계가 인정되면 담배회사가 조금이라도 책임을 지면 되지 어떻게 폐암환자들이 전부 패소할 수 있는지’ 의아스러울 수 있다.

필자는 여기서 담배소송의 핵심이었던 ‘입증책임의 전환이론’이나 기타 다른 법리적인 쟁점에 대해 일일이 논의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부동산 소송을 전문으로 하는 변호사로서 담배소송과 마찬가지로 ‘일반적인 입증’이 아니라 ‘개별적 입증’의 중요성을 언급하고 싶다. 이 경우 개별적인 입증의 핵심 열쇠는 부동산 계약서에 기재된 ‘특약사항’에 달려 있다.

담배소송에서도 그러했듯이 법적으로 ‘심증과 물증’은 엄격히 구분이 된다. “일반적으로 어떠어떠하니 나의 경우에도 그렇다”, “서로간에 구두약속이 있었다”는 식의 주장으로는 법원을 설득시키기 어렵다. 재판에서 승소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물증이나 계약서의 특약이 중요하다. 계약서의 문구 하나로 수십억 원의 돈이 왔다 갔다 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필자가 수행한 사건을 예로 들어 부동산 계약 시 개별약정(흔히 특약이라 함)의 중요성을 언급해 본다.

의뢰인 A씨는 모 건설회사로부터 상가를 분양 받았다. 그런데 분양 당시 분양대행사에서는 “일정한 수익률을 보장해 준다”, “잔금을 치르기 전에 분양권을 책임지고 전매해 주겠다”는 확약서를 써 주었다. 일반적으로는 분양대행사에서 그런 확약서를 써 주는 경우는 드물다. 어쨌든 의뢰인은 그런 확약서를 받았고, 분양사에서 이를 이행치 않자 분양계약 해제소송을 제기하였다. 이런 경우 대개의 분양사는 법적인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실제 이 사건에서 있어서도 우리가 소장을 제출하자 분양사에서는 자기 책임을 100% 인정하여 계약을 해제해 주었다) 그런데 만약 그런 확약서가 없었다면 소송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모르기는 해도 상가 분양계약 시 그런 식의 과장광고는 흔히 있는 일이고 분양계약자가 그런 말을 믿고 계약을 했다 하더라도 법적으로 계약을 해제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행히 A씨는 분양계약 당시 특약을 서류로 남겨 후일 소송에서 승소한 것이다.

또 다른 예다. 의뢰인 B씨는 3층짜리 상가건물을 매입하여 5층 건물로 리모델링 하면 임대수익을 많이 올릴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건물을 매입했다. 그런데 매매계약서를 작성하면서 특약사항에 ‘전주인과 임차인 C의 임대차 계약을 승계한다’(법률용어로 ‘채무인수’)는 조항을 달았다. 상가를 매입하면서 새 주인이 기존 임차인들의 임차권을 그대로 승계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런데 의뢰인 B씨는 별 문제가 없을 거라는 생각에 그렇게 했다. 그러나 건물 리모델링을 위해서는 C의 협조가 필요하였는데 C에게 잠시 상가를 비워달라고 했더니 C는 “임차권을 승계했으니 임대기간 만료 전에는 절대 나갈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명도소송을 통해 강제조정을 이끌어 내기는 했으나 법적으로는 아주 불리한 상황이었다.

이렇듯 개별 부동산계약에서 “일반적인 사정은 어떠하다”, “나의 경우에는 너무 억울하다”는 말은 의미가 없다. 부동산 계약 시 상대방에게 당하지 않으려면 특약사항을 꼼꼼히 기재하여야 한다. 담배소송에서도 개별적 인과관계를 입증치 못하여 패소했듯이 부동산 소송에서 승소하기 위해서는 특약사항을 꼼꼼히 챙겨야 한다. 아직 변호사 사무실의 문턱이 높다고는 하지만 주변을 둘러 보면 훌륭한 변호사가 얼마든지 있다. 부동산 계약을 체결하기 전에는 반드시 법률전문가와 상의하라! 이것이 자신의 권리를 온전히 지키는 길이다.

<매일경제 최재원 現 법무법인백상 전문 변호사>